수원시 홍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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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쇼 설명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70만 년 전부터이다. 수원지역에서는 지동과 이의동에서 중기 구석기시대〔(25-20만 년 전) ~ 4만 년 전〕로 추정되는 긁개와 여러면석기, 몸돌, 격지 등이 채집되었다. 또 고색동유적·파장동유적과 옛 수원지역에 속했던 화성 대야미리유적에서 중기 구석기시대 후기와 후기 구석기시대(4만 년 전 ~ 1만 년 전)의 여러면석기 및 긁개, 밀개, 홈날, 주먹대패, 찌르개, 몸돌 등이 수습되었다. 그리고 화서동 꽃뫼유적·율전동유적과 옛 수원 지역이었던 화성 동학산유적 등지에서 신석기시대〔1만 년 전 ~ (B.C 2,000-1.500년)〕의 빗살무늬토기편이 채집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 수십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서둔동 여기산유적을 비롯하여 율전동유적·이목동유적·호매실지구유적과 화성 동학산유적·화성 천천리유적 등에서 당시의 집자리와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구운동·금곡동·당수동·정자동 등지에서 청동기~원삼국시대〔(B.C 2,000-1,500년) ~ A.D 300년〕의 유물이 채집된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는 사람들이 구릉이나 평지에 오늘날의 농촌과 비슷한 마을을 이루며 거주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수원지역을 최초로 차지하였던 국가는 백제였다. 백제는 3세기 중엽 고이왕 때에 이르러 급격히 발전하여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에 고대 국가체제를 완성하였는데, 지금의 경기도지역 대부분이 당시 백제의 영토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인해 한강유역과 수원을 포함한 그 주변지역은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이때 수원의 고유지명은 ‘매홀(買忽)’이었다고 한다. 매홀은 물고을이라는 발음의 표기로 추정되며, 여기에서 한자식 지명인 수원(水原)이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해양교통로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당항성(현재 화성시 소재)은 삼국간의 항쟁이 매우 치열하였다. 이렇듯 해양활동의 주무대였던 수원지역은 삼국의 각축장으로 삼국이 번갈아 점령하였는데, 마침내 신라는 한강 하류지역을 차지하고 553년에 신주를, 557년에는 북한산주를, 561년에는 남천주를 설치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9주 5소경의 설치에 따라 수원은 한산주(漢山州)에 속하였는데,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 지명을 한자(漢字)로 바꿀 때 한주(漢州) 소속의 수성군(水城郡)이 되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수주(水州)라 하였고, 1271년(원종 12)에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가 되어‘水原’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수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수원부, 수원군, 수원부로의 변화를 거듭하였다.
슬라이드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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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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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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